체임벌린과 아비시니아 위기?

체임벌린과 아비시니아 위기?

 

체임벌린과 아비시니아 위기?

1934년 당시 재무부 장관, 네빌 체임벌린은 영국은 독일,일본과의 동시적인 양면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당에, 1935년 이탈리아의 아비시니아 침공이 있었고, 이후 이탈리아가 영국의 적에 추가되었다. 

아비시니아 위기는 체임벌린의 구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는 그의 타협외교 정책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체임벌린에 따르면, 영국이 프랑스,영국,이탈리아의 반독일 연대인 스트레자 전선을 깨는 것은 "한여름의 심각한 광기"였고, 로마를 화내게 만들고, 이탈리아를 독일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이탈리아에 대한 국제연맹의 대-이탈리아 경제제재를 관철시켰다. 영국 외무차관 밴시타트에 따르면, "심오하고, 거대한 이유때문에, 즉 유럽 평화의 보존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이탈리아와 싸울 여유가 없고, 이 나라를 독일 품에 안기게 만들 수 없다. 이탈리아와의 분쟁의 영향으로, 런던,파리,로마의 유럽 화합이 깨질 수 있고, 이탈리아가 국제연맹을 탈퇴할 수 있다. 이는 불쾌한 필연이 될 뿐만 아니라 이를 무시한다면, 우리 측이 범한 가장 위험하고 용서할 수 없는 오판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존재가 의존하는 현실주의 정책으로부터의 심각하고 바보같은 이탈이 될 수 있다." 

체임벌린의 시각에서, 영국은 제3의 적국을 추가할 여유가 없었다. 1937년 11월 영국해군의 챗필드에 따르면, 잠재적인 3중의 위협에 직면해서, "우리는 우방을 만들어야 하고, 적을 추가하면 안 된다." 국방 조정 장관 Minister for Co-ordination of Defence 인스킵은 외교를 통해서, "우리의 해외 책임과 잠정적 적국의 수"를 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체임벌린은 밴시타트,핸키,인스킵 같은 참모본부와 정부 내의 국방정책 핵심 관료들과 인식을 같이했고, 1937-1939년 동안, 그의 외교정책의 핵심과제는 이탈리아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최대목표로 체임벌린은 이탈리아는 반-독일 동맹 진영으로 복귀시키려 했다. 최소목표로 그는 만약 독일 혹은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면, 로마가 영국에 대해서 우호적 중립을 지키는 것을 삼았다. 

-Christopher Layne, “Security Studies and the Use of History”, 4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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